번역에 대한 고찰 시리즈

1. ‘밥 먹었니?’라고 묻지만, 정작 ‘밥’에는 관심이 없다.

 

"오빠, 식사하셨어요?"

예전에 한 여자후배가 식사했냐며 내게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이 질문에 필자는 아무렇지 않게 "응, 먹었어. 넌 밥 먹었니?"라고 대답했다. 그냥 오가다 묻는 안부 정도로 여겼으니까. 헌데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녀석이 '으이구, 멍충아!'라며 나를 하루 종일 바보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녀석의 말인즉, 후배가 내게 밥 먹었는지를 묻는 것은 곧 '밥 사달라'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고, 결국 나는 단 둘이서 식사할 수 있는 '그 좋은 찬스(?)'를 놓쳤다는 거다. 그러니 나는 졸지에 굴러온 박을 차버린 '줘도 못먹는 놈'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나. 뭐 녀석도 이론'만' 빠삭한 솔로부대의 말년병장이었기에 녀석의 논리에서 그다지 큰 신빙성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수긍하는 동시에, 앞으로는 여자가 밥 먹었냐고 물어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문득 궁금해졌다. 녀석 말대로 내가 눈치 빠르게(?) 먼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나서야 되는걸까. 만약 정말로 단순하게 '안부'의 의미로 물어본 건데 내가 데이트신청을 해버리면 정말 '이상한 놈'이 되는 건데 말이다. 난 여지껏 '밥 먹었니?'는 인사로만 생각해왔거늘... 아, 정말이지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결국 필자의 ‘밥 먹었니’에 대한 고찰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곳 중국에서도 '밥 먹었니吃饭了吗?'는 하나의 '인사'로써 그 뜻이 통용된다. 표면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자면 단순히 식사의 여부를 묻는 문장이겠지만, 그 진의는 오히려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인사표현에 불과하다. 이는 서구문화를 비롯한 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다. 노랑머리 친구들에게 ‘밥 먹었니’라는 질문은 ‘난 햄버거 먹었어’ 라던지 ‘그걸 왜 물어?’와 같은 대답에 더 어울리는, 그야말로 ‘밥 먹었는지’를 묻는 표현일 뿐이다. 만약 철저하게 ‘Made in Korea’인 필자가 미숙한 영어실력으로 ‘식사하셨어요?’를 ‘Have you eaten?’이라던지 ‘Did you have your meal?’이라는 식으로 번역을 해서 미국인에게 보여줬다면, 혹은 위에 나온 ‘오빠, 식사하셨어요?’ 이야기를 이와 같이 표면적인 부분에만 착안해서 직역을 했다면 서방세계의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로 ‘생뚝맞은’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위 예시로부터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사전에 나와있는 단어들의 1:1 대응만이 진정한 번역이라고 할 수 만은 없다. 그렇기에 소위 ‘번역기’라고 하는 자동번역시스템의 맹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달한 디지털 21세기라 할지라도 역자의 ‘영혼이 담긴’ 아날로그 번역을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언젠가 한번쯤 ‘번역기스러운’ 번역을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이미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작업인지 알고 있는 셈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역’이라고 하는 것은 한 국가와 다른 국가, 혹은 한 문화와 다른 한 문화가 서로 만날 때 상호간에 존재하는 이질점을 최대한 해소해주고 '나의 관점'으로 '상대방의 관점'을 독자에게 '이해시켜주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번역의 개념을 단순히 객관적인 스킬을 넘어선 '영혼간의 교류'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렇게 ‘영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번역이 되기 위해서는 번역을 해야 할 대상뿐만 아니라, 그 완성된 번역을 보게 될 대상 또한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이란, 번역수단으로 사용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그 언어의 배경이 되는 문화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을 말한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언어만을 가지고 번역을 한다는 것은 전쟁 중에 총알 없이 총만 들고 전투에 임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밥 먹었니?’가 안부를 묻는 인사의 한 표현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해 기아와 빈곤이 만연했던 시기였기에 ‘배불리 밥을 먹는다는 것’이 곧 ‘안녕’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릿고개’라는 말을 번역할 때 이처럼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빠뜨린 채 직역을 하게 되면 이는 ‘보리가 심어져 있는 고개’로 전락하게 되어버린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보릿고개를 보리가 가득 심어져 있는 언덕쯤으로 해석한다면 그는 심각한 난독증을 앓고 있거나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사람이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번역’이라는 문화의 교량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이처럼 참된 번역이란 양쪽을 모두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자, ‘밥 먹었니?’라고 물어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밥’에는 관심이 없는 이 문장을 제대로 ‘전달’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닐까.

 

글_ 한국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