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 그리고 세계에서 유례없는 정복속도로 3대륙을 지나는 대제국을 세운 알렉산더. 기원전 3세기 인더스강에서 인도왕 포로스의 코끼리 대군을 격파한 알렉산더의 원정군은 힌두쿠스 산맥을 넘고 돈황(敦皇)을 지나 중국의 변방인 촉(蜀)지방에 물밀듯이 쇄도해 들어왔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군(그리스정병과 비(非)그리스인 10만) 보병은 직사각형 방진(方陳)으로 이루고, 밀집한상태로 창끝을 내놓고 나아갔고, 공격상대는 진시황 휘하 진(秦)나라 대군으로 왕진 장군이 이끄는 50만 대군이다. 알렉산더군은 가우가멜라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섬멸시킨 예진(銳陳)으로 적의 심장부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진나라 군대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고, 진나라는 v자형태인 안행지진을 사용하여 기병,궁병,보병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맞섰다.

 

동,서양의 가상 세계격돌 과연 그 승자는...?

만약 고대 유럽군대와 중국군대와 실제로 전쟁(알렉산더군이나 로마군이 중국까지 원정했다는 주장도 제시되고있음)이 벌어지면 진나라는 막강한 보병밀집 부대를 막아낼수있었을까? 이 답을 바로 진시황릉에 있다.

 

이곳에서 나는 고대 중국의 군세가 고대 서양의 군세를 능가 했음을 알수있다. 고대세계에서 군대전술은 서양은 보병,서아시아는 기병,동아시아쪽은 사람과 말이 고루 사용되었다. 서양은 이때 영화'300'에서 보았듯이 긴창을 내밀고 네모꼴을 유지하면서 울타리처럼 둘려쳐진 방패를 뒤로 하여 전진하는 팔랑크스이다.

 

중국의 진나라는 전국시대때 여러 국가를 쓰러뜨린 안행지진을 사용하였다. 처음 대치하면 파괴력 강한 석궁수들이 전방에 쏘아 적을 분산시키고, 보병 부대가 돌진하면 측면에서 기병과 전차군단으로 공격하였다. 알렉산더는 예진으로 다리우스를 격파했지만,후에 로마는 같은 전법을 사용하다가 칸나이평뤈 전투에서 한니발의 사진(斜陳)의 양날개 안쪽으로 들어와 포위되 4만의 로마군이 말그대로 녹아내렸다.

 

이렇게 보면 모든 병과를 조합해 어떤 전술에도 변화무쌍한 진시황의 전술은 고대 어느 강대국 군대뿐만 아니라 천하무적인 알렉산더의 군대와도 겨룰만했다고 짐작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고대세계에서는 현대처럼 대량살상무기인 기관총,대포 같은것들이 없었으므로, 병사수로 승리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중국인구의 3천만으로 한번 출진에 50~60만 동원은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알렉산더는 제국내의 군대를 다모아도 10만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일단 병력규모에서도 진나라가 앞섰다.

 

한가지는 각 나라의 군대의 민족 구성에서도 볼 수 있다. 일단 50~60만의 군대 동원 대부분이 중국 중원 및 각지에서 징집해온 병력들로 군사들 내부간의 이질감은 적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군대는 정복지 각지에서 징집해온 병력이므로, 민족간의 이질감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민족 구성은 충분히 군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라고 볼 수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따져야 할 것은 이 전쟁이 중국에서 싸운다는 가정이 성립 되어있는 것이다. 홈 그라운드의 이점은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전략으로 인해 알렉산더의 군대를 손쉽게 격파 할 수도 있을것이다. 거기에다가, 알렉산더의 군대는 원정으로 인하여, 군대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 , 즉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하면 알렉산더군이 불리 할 수밖에 없는게 사실이다.

 

역사에서는 '만약'이란게 없지만, 알렉산더가 중국을 침공했더라면 진시황의 강력한대군에 밀려 알렉산더는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당했을 것이다...'만일'이 성립 되었더라면.....


-인용서적 ‘한권으로읽는 이야기 중국사’ , 《中国古代史纲》-